사회가치 공유 언론-소셜밸류 - [음식 단편선]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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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단편선] 1회

김민정 / 기사승인 : 2019-08-30 23: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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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치구이


“덴뿌라 열 개, 설탕 10kg, 식용유 2L.... 오케이. 아, 다음에 올 땐 무 20개만 추가해줘. 이런 씨부럴. 뭔 놈의 깍두기가 벌써 떨어지는지. 다들 안주는 안 시키고 김치만 리필해서 쳐자신다니까?”




낡은 앞치마를 둘러맨 주인장은 한참 너스레를 떨다가 카악하곤 길바닥에 가래를 내뱉었다. 땅바닥에 버려진 가래는 마치 조금 전까지 살아 있는 생명이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하얗고 희미한 김을 공기 중에 흩뿌려댔다. 퉁퉁하면서도 건장한 체격의 주인장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식재료 상인은 멋쩍게 미소를 띄며 스쿠터에 실린 무나 배추 따위를 정리했다. 거래처인 주인장의 말을 열심히 들어주는 척 하고는 있었지만, 식재료 상인의 머릿속에는 시간 내에 끝내야 할 배달 업무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내 수고하시라는 형식적인 인사말을 남기고는 골목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순식간에 말동무를 잃어버린 주인장은 잠시 가게 앞을 괜히 서성이다 지난 번보다 가벼워진 식재료 박스를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12월의 서울. 인쇄소로 즐비한 골목길에는 간간히 셔터 문을 내리는 늙은 상인들의 인기척만이 들려 올 뿐이었다. 유흥을 즐기는 젊은이들로 활기를 띄는 서울 한복판의 번화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주인장이 인쇄소 골목에 이자카야를 오픈한 것은 십 년도 더 된 일이었다. 사실 그 시작은 이자카야가 아닌 가격대가 있던 스시집이었다. 그의 가게에는 하루 일과를 마친 인쇄소 상인들 뿐 아니라 근처 회사의 넥타이 부대까지 몰려들어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호시절이었다. 그는 말주변이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음식에 있어서는 정직한 사람이었기에 단골도 제법 있었다. 주인장은 그렇게 수천마리의 생선을 손질하며 여자도 만나 결혼도 하고 귀여운 아들까지 하나 얻었다. 늦은 밤까지 칼을 드는 일은 무척이나 고되고 힘들었지만 하루 일과를 마치고 금고를 열 때면 뿌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특히 늦은 밤, 집에 들어가 곤히 자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는 자신이 꽤 잘 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몇 년 뒤, 예상치 못했던 경제 위기가 찾아왔다. 윗분들이 하는 일이 자신의 삶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타격은 컸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비싼 스시를 먹는 넥타이 부대들의 숫자 역시 현저히 줄어들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출판 시장이 침체 되며 인쇄소 상인들의 주머니 사정마저 각박해졌다. 하지만 살아 남아야 했다. 사람들의 인심이 박해지자 그는 전략을 바꾸어 오뎅탕이나 나베처럼 저렴한 메뉴를 추가하기 시작했다. 아들의 학원비가 모자란다는 아내의 푸념 섞인 말을 들었을 때는 근처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점심 메뉴를 만들어 팔기도 했다. 새벽 늦게 가게 문을 닫고 이른 아침부터 나와 점심 장사를 준비해야 하는 삶이 쉽지는 않았으나 그는 악착같이 버텼다. 옛날에는 제법 근사한 스시집이었던 그의 가게는 어느새 그 시작점을 잃고,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저렴한 이자카야로 탈바꿈해 있었다. 그리고 주인장의 아들이 대학에 들어갔을 때, 그는 두툼한 배에 희끗한 머리를 지닌 중년의 초라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어찌보면 노년에 훨씬 더 가까운.




오후 7시. 가게는 평소보다 훨씬 더 조용했다. 가끔 들려 소주를 마시고 가던 성광 인쇄소 사장도 오늘은 보이질 않았다. 그는 싱크대 위에 있던 초록색 행주를 괜히 집어 들고 나무로 된 바테이블을 훔치기 시작했다. 이미 두 번이나 닦은 테이블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어쩌면 오늘은 손님이 한 명도 없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일찍 문을 닫고 들어가는 것이 나을지도.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자연스레 마누라의 쓸쓸한 표정이 떠올랐다. 벌이가 형편없는 남편에게 의지하는 것을 포기한 아내는 얼마 전부터 집 근처에 새로 생긴 김밥집으로 아르바이트를 다니고 있었다. 평생 집이 아닌 다른 이의 주방에 서 본 적이 없었기에 밤마다 파스 냄새를 풍기며 앓는 소리를 내곤 했다.






그 때였다. 뻑뻑한 가게 문을 열고 손님 둘이 들어섰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는 잠시 가게 안을 두리번거리더니, 주인장이 갓 닦아 놓은 바 테이블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는 탐색하듯 천천히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말끔한 차림새로 보아하건데 그들은 이 동네에 처음 온 사람들이었다. 주인장은 물병과 오래된 메뉴판 하나를 그들 앞에 가져다 놓고는 주방 한 켠으로 가 쪽파를 다듬는 척 했다. 새로운 손님이 가게를 찾는 것은 정말로 오래간만의 일이었기에 그는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잠시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둘은 겨울의 온도를 품고 있던 겉옷을 벗어 테이블 옆 옷걸이에 걸었다. 가게에 옷걸이를 걸 수 있는 고리는 하나 뿐 이었기에, 여자의 코트가 먼저, 그리고 그 위에 남자의 점퍼가 겹쳐져 걸렸다. 남자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잠시 자리를 떴다. 여자는 메뉴판을 보며 음식과 술을 고르다가 걸어 놓은 겉옷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뭘로 드릴깝쇼?”



정적을 참지 못하고 주인장은 결국 여자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그녀는 옷걸이에 머물렀던 시선을 황급히 거두고 주인장을 바라보았다. 하얀 피부에 굵게 웨이브진 단발 머리, 단정한 색의 립스틱. 거기에 화장으로 감추지 못한 주름과 검버섯, 쳐진 목살도 차례 차례 눈에 띄었다. 젊었을 때는 꽤나 미인이었을 법한 얼굴이었지만, 세월은 그녀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간 듯 보였다.




“꼬치구이에 사케 한 병 주시겠어요?”




여자는 마치 메뉴를 정해두었던 사람처럼 살짝 미소를 띄며 말했다. 주인장은 차갑게 식어 있던 숯에 불을 붙인 뒤, 냉장고에서 꺼낸 닭을 손질해 화로 위에 올렸다. 닭에서 떨어진 기름이 불꽃에 닿으며 타닥거렸고, 이내 조용했던 이자카야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화장실에 갔던 남자가 자리로 돌아왔다. 희끗한 머리에 안경, 브이넥 셔츠는 무척이나 점잖은 인상이었다.



“주문하셨나요?”


“네. 제 마음대로 꼬치구이 하나 시켰어요. 원하시는 걸로 더 시키세요.”


여자는 미소를 띄며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는 괜찮다고 대답한 뒤 잔에 물을 따랐다. 둘은 오래 된 사이인 것 같았지만 그리 가까워 보이지는 않았다. 오가는 대화에는 이따금씩 정적이 흘렀다. 둘의 시선은 대개 꼬치를 굽는 주인장의 손놀림에 있었다.




[뮤즈: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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