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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밀어내고 전자책을 들였다

지미준 / 기사승인 : 2020-04-04 18: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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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사용으로 확 늘어난 독서량
글자는 모두의 것, 글은 소수의 것



애서가들은 일단 부자여야 한다. 책을 둘 공간이 있어야 하고, 공간을 가지려면 넓은 집이 필요하고, 넓은 집을 가지려면 돈이 많아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넓은 서재와 넓은 집을 아직 가져보지 못했다. 그래서 애서가는 못 된다. 그나마 한쪽 벽면을 꽉 채울 정도의 책들이 있었다.


[출처: 픽사베이]

전자책에 익숙해지다


전자책이 보급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이거 눈 아프고 답답하고 영 책 같지도 않고 도저히 못 보겠네'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영원히 종이책만 고집할 줄 알았다. 종이를 넘기는 맛이 좋았고, 한 눈에 들어오는 수많은 글자들이 좋았고, 줄을 긋는 맛이 좋았다. 지하철을 탈 때도 항상 책을 가지고 다녔다. 스마트폰에 빠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스마트폰은 활자의 세상이었다. 읽을 거리가 넘쳐났다. 사용시간도 길어졌다. 액정에 나타나는 작은 활자들에 점점 익숙해졌다. 세상만사가 스마트폰 안에 있으니 손에는 책 대신 스마트폰이 쥐여졌다. 지하철을 탈 때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책의 자리가 어느새 작은 전자기기에 빼앗겨버린 것이다.


어쩌다 책을 읽고 싶어 다시 책을 들고 다녀봤다. 무겁고 거추장스럽다. 전철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없다. 좌석에 앉아 책을 펼치면 왠지 옆에 앉은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다. 그 옛날, 신문을 펼쳐들고 있는 사람이 민폐였던 것처럼. 그래서 책을 덮고 다시 스마트폰을 꺼낸다. 이럴거면 차라리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보자. 그래서 전자책을 읽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활자에 익숙해진 뒤 다시 펼친 전자책은 처음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글자 크기도 인터넷상의 크기보다 크고, 스크롤할 필요 없이 버튼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게 편했고, 한 페이지를 다 읽을 때까지 화면이 꺼지지 않는 게 좋았고, 어두운 곳에서는 글자색과 배경색을 반전시킬 수 있어 눈이 덜 아팠다. 처음에는 그토록 불편했던 전자책이 이제는 종이책보다 익숙해졌다. 어딜 가나 전자책을 켜서 읽는다. 무겁지도 않다. 한꺼번에 여러 권을 들고 다닐 수 있다. 한 해에 읽는 책의 권수가 종이책 시절보다 많아졌다.





책장을 비웠다


며칠 전, 방을 정리하면서 선언했다. 더 이상 종이책을 수집하지 않겠다고. 실제로 전자책에 맛을 들이면서 책장에 꽂히는 종이책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물론 단점은 있다. 전자책의 유통량이 종이책보다 훨씬 적다는 것. 문학계에서는 일단 종이책으로 먼저 출간을 해야 인정받는 풍토도 있다. 전자책 출판업체가 폐업할 경우 다운로드받은 전자책이 함께 사라지는 문제도 있다. 무게만큼이나 '가벼운 속성(?)' 때문인지 전자책 독서가 스낵컬처로 취급받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분위기도 점점 바뀌어가는 것 같다. 전자책 이용 인구가 늘어나고 업계 경쟁도 활발해지면서 독서가들의 도서 선택폭도 넓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업체들의 구독제 내지는 월정액제가 한몫을 한 듯하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글자는 모두의 것, 글은 소수의 것


전자책이 편리하다고 해서 독서 인구가 늘어날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책을 읽을 사람은 어떻게든 읽고, 읽지 않을 사람은 세상이 아무리 편해져도 읽지 않는다. 과거에는 문자가 권력층의 특권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그 특권을 누린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문자는 더욱 민주화되었다. 한국은 문맹률이 낮은 동시에 문해율이 낮다. 글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 누구나 글자를 읽을 수는 있지만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특권인 셈이다. 과거의 권력층만이 문자를 소유했던 것처럼. 즉, 특권을 누리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비율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배우지 못해 읽을 수조차 없었다면, 지금은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이해하지 못한다. 책 읽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고 해서 안 읽던 사람이 갑자기 책을 읽지는 않는다. 결국 글을 이해하는 것은 특권층과 지식인들의 몫이 되어버렸다.


시장은 변화의 바람을 타고 오디오북이란 것을 세상에 내놓았다. 콘텐츠는 점점 다양해지고, 오디오북 제작사의 수익도 점점 늘고 있다. 그렇다면 오디오북을 통해 지성의 민주화가 이루어질 것인가? 활자로 된 책은 결국 사라지게 될까? 아니면 모두가 오디오북에 익숙해질 때쯤, 활자가 다시 한 번 특권의 도구가 될까? 질량 보존의 법칙이 떠오른다. 물질의 질량도 보존되고, 돌아이의 질량도 보존된다. 특권의 도구도 보존된다고 본다.


[저작권자ⓒ 사회가치 공유 언론-소셜밸류.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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